한탑스님─업보윤회 이치 알면 참생명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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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각사 댓글 0건 조회 618회 작성일 14-06-04 15:05본문
업보윤회 이치 알면 참생명 얻어
한탑스님
우리는 불교를 믿으면서도 불교의 의미를 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업보윤회의 이치를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입으로 짓는 구업(口業),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생각으로 짓는 의업(意業), 이 세 가지 업을 빼 놓고서는 우리의 일상 생활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지은 업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씨가 되어 그에 상응한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이를 바로 업보라 합니다.
전생(前生)에 지어 금생(今生)에 받는 업, 금생에 지어 내생(來生)에 받는 업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운명적으로 현실에 부딪쳤다고 생각되는 것도, 나 아닌 다른 무엇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입니다. 즉 난관에 봉착했을 때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방식에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반성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내가 오늘 하루종일 하고 있는 일도 앞으로 받지 않으면 안될 업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밭에 콩이 난 것을 보았다면 과거에 그 밭에 누군가가 콩을 심은 것이겠지요. 이처럼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현재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수행종교입니다. 여기서‘행,이란 바로 업을 말하는 것이며, 업은 일상생활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수’는 닦는다는 의미입니다. 닦는다는 것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잘못된 것을 수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즉 불교를 기복적으로 믿으면 절대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가시나무에 대한 비유를 들겠습니다. 여러분의 집 마당에 가시나무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나무를 복숭아 나무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농촌지도소에서는 분명히 그 가시나무를 뽑고 복숭아 나무를 심으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을 귀찮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점집에 찾아가 부적을 사서 가시나무 밑에 묻어 두면 해결이 될까요. 이와 같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가시나무는 복숭아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즉 우리 마음 밭에 난 가시나무는 부적이나 사주 팔자에 의존해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받아들인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행동 하나 하나를 부처님 진리에 맞도록 고쳐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불교의 업보윤회에 따르면 과거의 업이 금생의 결과로 나타나고, 금생의 업이 내생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전생과 내생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20세기 이후 현대과학에서 전생과 내생에 대한 문제가 밝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따라 현장을 확인하면 꼭 맞아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미국 버지니아대 의과대학 스티븐슨 박사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전 세계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스티븐슨 박사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모아 연구한 결과 그 중 가장 중요한 사례를 묶어 《전생을 암시하는 20가지 사례들》이란 책을 펴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최면술을 걸어 현재에 깨어 있는 ‘나’는 놔두고 잠재의식에 암시를 주면 아무 논리와 윤리성 없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치 혼자서 잠을 자다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최면술은 연역역행법으로 잠재의식 속에 나이를 거꾸로 돌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최면술사 ‘번슈타인’은 “세상사람 모두는 잠재의식 속에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며 한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40대의 미국 여인에게 최면을 걸어 잠재의식 속에서 그녀가 말하는 것을 기록했는데, 그녀는 과거에 미국인이 아닌 아일랜드인으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직접 현장을 확인해본 결과 그녀의 말과 95% 가 맞아 떨어졌는데, 나머지 5%는 세월이 흘러 과거에 있던 것이 없어지고 현대의 새로운 것과 교체된 사항들이었습니다.
번슈타인은 최면술로 전생을 밝히는 사례를 들어 《서치 오브 브라이드 머피》란 책을 썼는데 1967년《사자와의 대화》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본이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전생을 47번이나 겪은 사람의 얘기도 나오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또 초심리학 분야인 심령과학에서는 그 사람 내면의 건강상태나, 굳게 닫혀진 금고 속에 돈이 얼마가 들었는지 알 수 있는 투시법으로 전생을 밝힐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 에드가 케이시는 투시법으로 사람에게 현재 나타난 문제에 대한 원인을 전생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에드가 케이시가 투시법으로 사람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총 2만 건 중에 2500건이 전생과 금생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예로 선천적으로 귀머거리인 사람이 찾아와 원인을 묻자, 에드가 케이시는 “당신은 전생에 로마제국의 귀족이었는데, 거지들이 구걸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 금생에 귀머거리가 된 것”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또 미국의 의학·철학 박사인 데이몬드 무드 박사는 뇌사와 심장 박동이 멈춘 상태로 죽은 사람이 분명한데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이 하나같이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몸뚱이가 죽어도 영혼을 가지고 다니는 ‘참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짓고 있는 업에 의해 전생과 금생 내생이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남에게 베풀기보다는 남이 내게 무언가를 해주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탐욕은 끝이 없어 채울 수 없으니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 같이 탐욕스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를 신앙하는 목적은 업보윤회를 벗어나는‘생사해탈’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과 함께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부처님 생명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의 ‘나무’는 ‘참 생명으로 돌아가자’란 뜻입니다.
‘아미타’는 우리보다 먼저 성불한 이들이 사는 곳을 뜻합니다.
‘지심귀명례’는 지극한 마음으로 참 생명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불교의 바른 법을 배워 업보윤회을 알고 하루 하루 나의 업을 닦아 가는 것이
나의 참생명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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