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스님─불교의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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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각사 댓글 0건 조회 578회 작성일 14-06-04 15:05본문
불교의 지옥
쌍계사 강원 강사
왜 희망이 열려있는 지옥이라 하는가
일정기간 지나 묵은 빚 갚으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어
몇년 전 서울역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깨띠를 두르고 간이 확성기를 든 사람들 한 떼거리가 지하도 입구에서 연신 떠들어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보더니 더욱 기승을 부리며 소리 높여 외쳤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갈 것이고, 믿지 않는 자는 모조리 지옥에 떨어진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내용의 말을 확성기에 대고 우리 일행을 좇아오다시피 하면서 외치고 또 외쳤다.
거의 제 정신이 아닌 듯 남의 말을 들어줄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하도 떠들어대기에 한 마디 응답해주었다. “당신들이 가는 천국이라면 사양하겠소.” 지리산 쌍계사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계절 따라 수많은 기화요초가 피고 지며,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들어내는 절경, 온난한 기후와 계곡의 맑은 물, 그리고 수 많은 먹거리 등등 주변환경으로만 보자면 거의 지상천국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좋은 곳에서 살더라도 함께 사는 대중 가운데 두어 사람이라도 자기주장만 일삼는다면 더 이상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시비분별에 떨어져 신경을 곤두 세우게 되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자기 양보란 없고, 자기 주장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 몇 명만 있어도 대중 전체 분위기가 삭막해지기 일쑤인 것이다. 하물며 제 신앙ㆍ제 종교ㆍ제 주장은 무조건 맞고, 남의 신앙ㆍ남의 종교ㆍ남의 주장은 무조건 틀리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어찌 천국이 될 수 있으랴. 남의 말은 아예 들을 생각조차 없으며 오로지 자기주장하기에만 급급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이기 전에는 천국이었던 곳이라도, 그 사람들이 모인 이후에는 더 이상 천국이 아니다.
전쟁은 이런 사람들이 일으키는 것이며, 지옥이 따로 없음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사실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매사에 순종하면 천국에 보내주고, 그렇지 않으면 영구히 지옥에 보내어 버린다는 논리는 깡패집단의 논리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깡패집단에서도 시키는 대로 잘 하면 풍족한 생활을 보장해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이 처벌을 가하는 것이다.
사랑과 평화를 앞세우는 종교집단이 깡패집단과 다를 바 없다면, 큰 문제가 아닐까? 불교의 자비(慈悲)는 이와는 다르다.
‘자(慈)’는 어여뻐서 사랑하는 것이며, ‘비(悲)’는 가엾어서 사랑하는 것이다.
말을 잘 듣는 이는 어여뻐서 사랑하고, 말을 안 듣는 이는 가엾어서 사랑한다. 결국 말을 잘 듣는 이나 말을 안 듣는 이나 모두 사랑하는 것이 불교의 자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지옥 조차 ‘자비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 안 듣는 놈을 영구히 지옥에 처넣어서 결코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업에 의해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라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 묵은 빚을 갚으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가 있다.
영구지옥이 아니라 임시지옥인 것이다. 게다가 지옥중생들을 모조리 제도하여 지옥이 텅 비기 전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님이 항상 머물러 계신다.
구원자가 있는 지옥. 한 마디로 희망이 열려있는 지옥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염라대왕 앞에서 ‘지옥으로 가라’는 선고를 받으면, 정신 차리고 얼른 다음과 같이 외쳐야 한다.
“잠깐! 꼭 지옥으로 가야 한다면 ‘불교지옥’으로 보내주십시오.”
[불교신문 2198호/ 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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